자유 2020년 5월 12일 오후 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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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표유신01 댓글 0건 조회 2,193회 작성일 20-05-1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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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 대한 회고록.

한평생 꽃 같던 아빠가 5월12일 떠났다. 고운 외모는 지난 세월과 생활고를 겪으며 많이 거칠어졌지만 어디 놀러가서 보면 아직도 마냥 사춘기 소년같고, 가끔 전화가 와서 내 속을 긁어놓는 소리를 하실 때도 있었다. 4월 중순, 아빠가 쓰러진 날에도 나는 평소와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하고 있는데 언니한테 끊임없이 전화가 왔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쓰러지셨다고..?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바로 대구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순간에도 아빠에게 그간 못해줬던 것들부터 떠올라서 눈물이 났다. 아빠는 혼수상태였다. 의사말로는 당장 오늘밤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했다. 언젠가는 아빠를 보내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준비되지 않은채로 맞이해서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영대병원 응급실에서 몇날며칠을 아빠곁에서 깨어나길 기도하며 간병했다. 근처 모텔을 전전하며 큰언니와 교대로 간병하다보니 몸이 다 상해가는데도 힘들 겨를조차 없었다. 아빠가 목소리는 듣지 않을까싶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일주일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깨어나서 딸들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부탁했다.

아빠가 아주 천천히.. 4일만에 깨어나셨다. 일반병실로 옮기고 나서 아빠는 정신도 맑아지고 딸들과 대화도 했다. 간경변 말기라는데 노력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말을 들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아빠를 보살핀 것 같다. 주말이든 평일이든 시간이 나면 대구로 내려가서 아빠를 보살폈다. 주말에 내려갔더니 아빠가 전날 병원에서 받은 빵을 안먹고 뒀다가 나랑 나눠먹기도 했다. 그렇게 느리지만 점점 더 좋아질거라 생각했다.

아빠는 좋아지지 않았다. 복막염, 난치성복수, 식도정맥류 같은 합병증들이 차례로 오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어쩌면 일주일도 안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아빠를 곁에서 보내주어야 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우선 딸들이 있는 서울로 아빠를 옮겨야 했다. 여기저기 간이식 잘하는 빅3에 전화를 돌려 삼성서울병원 예약을 잡았다. 아빠, 딸들 있는 서울로 가자. 하니 너희 고생해서 안된다.. 하신다. 여기있는게 더 고생이라며 아빠를 설득했다. 서울로 올라가기 하루 전,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오겠다고 인사하고 가려는데 같이가자.. 하신다. 응 아빠,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서울 갈거야. 푹 자둬.

서울삼성병원에 가서야 아빠의 정확한 상태를 알게되었다. 급성 간부전. 간병변 말기보다 더 안 좋은 상태라고 했다. 간이 아예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이미 한달전에 찍은 CT를 보고 남은 생은 길어야 한달이라고 했다. 아빠는 두 눈을 꼭 감고 들었다. 자신의 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짧게 가졌던걸까. 요양병원에서 4일 입원 후 삼성병원에 입원했다. 그새 아빠는 이발도 깔끔하게 해서 오셨다. 거울을 보여드리니 아빠도 머리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운 좋게 요양병원의 단체 이발날이었을까. 아니면 아빠가 부탁한걸까. 그건 아빠한테 물어보지 못해서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발이 시퍼렇게 멍든걸보면 그때 패혈증이 온 것 같다. 5월12일 아침 삼성병원에서 좋은 병실로 배정되었다. 선생님들 모두 아빠에게 예쁘고 좋은 말만 해주셨다. 나도 아빠랑 이제 일주일간 계속 같이 있을거야. 아빠 좋지? 하니까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다. 아빠는 종일 잠만 자셨고, 편안해보였다.

점심시간, 아빠는 갑자기 움직임이 사라지고 심정지가 왔다. 너무 충격적이라 중간중간이 끊어진 필름같이 느껴지지만 의료진 수십명이 달려왔고 예쁜 가족사진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언니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다행히 아빠는 맥박만 겨우 돌아왔고, 바로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나는 아빠가 사라진 병실에서 진정하지 못한 채로 떨어진 가족사진을 줍고 짐을 챙겨서 중환자실 앞으로 내려갔다.

내과 중환자실 의사가 나와서 간이식과 연명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하라고 했다.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병원을 무서워서 싫어하던 아빠였다. 내 욕심에 간이식이라는 큰 수술을 받게 해서 평생 절제된 삶을 살고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평생 원망을 들을까 무서웠다. 간이식을 안받고 편히 보내드리자니 간이식 받고 건강해진 사람들을 볼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것 같았다. 결국 할 수 있는 모든걸 다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중환자실 앞을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환자실에서 호출이 왔다. 더 이상 간이식도 해볼 겨를이 없다고, 이제 보내드리라 하신다. 아빠가 많이 망가지고 힘들어보였다. 아빠를 마음에서 놓아주고 언니들을 불렀다. 언니들이 올때까지 버텨야했다. 아빠가 눈을 감으려 할때마다 깨웠다. 언니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눈을 번쩍 뜨셨다. 세 딸이 다 모이고나서야 아빠는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한시간 넘도록 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서서히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편하게 잠든 얼굴로 그렇게 떠나셨다. 아빠가 너무 좋아하는 계절에 나무 사이로 엷게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어쩌면 아빠는 모든 삶을 정리하고 그날을 떠나는 날로 정했는지도 모른다. 좋은 병실에서 딸의 손을 꼭 잡으며 떠나기 좋은 날이라며 덤덤하게 가셨는지도.

한달 내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어서, 그리고 아빠가 떠나기 직전 내가 울음을 멈추고 아빠를 보내줄 수 있을 때까지 아빠가 기다려줘서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살아생전 그렇게 속을 썩이던 아빠가 떠날 때는 막내딸 고생안시키고 최대한 덜 슬퍼하게 해주고 싶었나보다. 한달이라는 시간도 정리할 시간을 달라는 막내딸의 떨리는 목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와서 선물로 주고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빠의 죽음이 비극은 아닌 것 같았다.

언니가 아빠는 수목장에 모시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평소 꽃과 식물을 워낙 좋아하셨으니까 듣자마자 아빠가 좋아하겠다고 느꼈다. 화장하고 하얗게 백골만 남은 아빠를 데리고 수목장으로 향했다. 친척들과 다같이 대형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아빠는 어디 놀러가는 줄 알았는지 언니 무릎에 앉은 아빠가 참 기분 좋아보였다. 수목장 아빠 옆자리엔 그새 친구 두분이 들어와계셨다. 외로울까봐 걱정했는데 참 다행이다. 아빠를 내려주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아빠자리를 쳐다봤다. 주말이 끝나면 병실에서 떠날때 나에게 늘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오늘도 나에게 손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잘 지내라며 손을 흔들었다. 잘 지내 아빠. 또 놀러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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