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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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89회 작성일 24-04-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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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개관

https://www.fmkorea.com/6448012419


2. 춘추시대(春秋時代) 주요 국가 소개

https://www.fmkorea.com/6451569014



[프롤로그..당시의 상황]

지금부터 서술할 이야기는 춘추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이 과정을 거쳐 진나라가 셋으로 쪼개지고 전국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때 진晉나라는 대대로 고위직을 세습하던 유력가문들이 서로 뒤통수를 쳐대고서로 편먹고 소수파를 축출하는 등

권력싸움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서로 싸워대다 보니 점점 열국의 민심을 잃게 되었으며,

자연히 진晉나라가 지키고 있던 중원 국가들의 맹주라는 자리는 유명무실해졌고

열국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K-026.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B.C 512년의 지도. 오나라와 초나라간에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기 전의 상황이다>

이때 남방의 초나라는 오나라에게 공격받아 수도인 영 까지 따먹혔다가

서쪽의 진秦나라의 도움으로 겨우 수도를 수복하여 숨을 고르던 시기여서

중원의 국가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오나라 역시도 초나라를 치는 사이에 그동안 힘을 길러왔던 월나라에게 공격받아

오초 전쟁이 오월 전쟁으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춘추좌씨전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되도록이면 진나라 내부의 분열에 집중하여 간략히 서술하였고

이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들(ex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 등의 남방국가들 등)은 모두 잘라냈다.


여기에 서술되지 않은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므로

완전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춘추좌씨전'을 읽어보길 추천함.


레퍼런스는 전통문화 연구회의 동양고전DB에서 가져왔다.

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1e0207&titleId=C268&compare=true



[B.C 497년]

조씨가문 종주인 조간자 조앙이, 조오에게 위나라 백성 5백 호를

조씨의 수도인 진양으로 옮기라고 요구하였다.


(3년 전, 위나라가 진나라를 배신하고 제나라에게 붙자, 이것을 징벌하기 위해

조씨의 종주였던 조간자 조앙이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를 포위했었는데,

이때 위나라에서 철군하면서 위나라의 백성 500호를 받아온 일이 있었다.


당시 위나라의 수도인 제구에서 조씨 가문의 수도였던 진양까지는 너무 멀었으므로

조씨 가문 제 2의 도시라고 할 수 있었던 큰 성읍인 한단에 이 위나라 백성 500호를 맡겼었다.)


이때 조간자는 조씨가문의 종주라고 할 수 있는 본가의 수장이었고,

한단을 다스리던 조오는 조씨가문 분가의 수장 쯤으로 추정되는데, 한단에 있던 위나라 백성 5백호를

진양으로 옮기라고 명령한 것이다.


조오는 조간자의 명령에 흔쾌히 따르겠다고 하고서는

자신의 영지인 한단으로 돌아가 자신 휘하에 있던 같은 가문 원로들(분가의 사람들)과 이 일을 의논하였는데,

분가의 사람들은 이것을 완강히 거부하며 조오를 설득하였다.


"지금 위나라가 우리 한단을 돕는 것은 바로 이 위나라 백성 5백호가 한단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들을 진양으로 옮긴다면 위나라와 우리의 우호는 끊어지는 것이니 이들을 지금 보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을 들은 조오는 조간자에게 사람을 보내 지금 이들을 진양으로 돌려보내기는 어렵다고 전했고

그러자 대노한 조간자가 조오를 소환하여 진양에 가두었다.



<B.C 506년, 중원 지역의 지도>

지도1.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숫자 1, 빨간 동그라미가 조씨 가문의 수도였던 진양

숫자 2, 파란 동그라미가 조씨 가문 제 2의 도시 한단

숫자 3, 초록 동그라미가 위나라의 수도 제구

숫자 4, 주황색 동그라미가 추후 주 전장이 되는 조가(본래 위나라의 수도였던 적도 있었다)

숫자 5, 갈색 동그라미가 당시 진나라의 수도였던 신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진양과 한단은 거리 상으로 꽤나 멀리 떨어져 있고

한단은 위나라의 바로 북쪽에 있었으므로 이 위나라 백성을 자기들에게 잡아두는 것이 인구 면에서나

외교 면에서나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그러나 화가 풀리지 않은 조간자는,


"나는 조씨의 수장으로서,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조오를 개인적으로 처벌할 것이니

자네들은 후사를 세우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시라"


그러고는 조오를 그대로 처형해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한단은 조오의 아들 조직을 후사로 세우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진나라 조정에서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상군사마 적진籍秦을 보내 한단을 포위하였는데,

원래대로라면 그냥 여기서 가볍게 진압당하고 끝났어야할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이 결국 진나라 육경 모두가 휘말리는 거대한 내전으로 변하게 되는데...

그 원인은 이러했다.


조간자가 처형한 한단의 조오는

당시 진나라 육경(六卿)의 하나였던 중항씨의 종주였던 중항인(순인)의 생질이었다.

조오의 어머니는 바로 중항인의 누이였으므로 두 가문의 사이는 꽤나 돈독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중항인은 또 다른 육경 중의 한 가문인 범씨의 종주 범길사와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 즉 범길사의 사돈이었으므로

범씨와 중항씨도 서로 돈독했다.


안그래도 이 당시는 진나라 육경끼리 나랏일은 점점 뒷전이 되고 자기들끼리의 권력다툼이 점점 심해지던 시기였으므로

이 일은 이 두 가문이 서로 손을 잡고 조씨를 멸망시키기에 딱 좋은 명분이 되었다.


그리하여 범씨와 중항씨는 서로 손잡고, 한단을 포위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조간자를 공격하여

멸망시키려고 일을 꾸미게 되는데, 이 소식이 조간자의 귀에도 들어갔다.


조간자의 책사였던 동안우가 조간자에게 말했다.


"저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대비하십시오"


조간자가 말했다.


"진나라 법에는 먼저 난을 일으킨 자를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저들이 먼저 변란을 일으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뒤에 대응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러자 동안우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먼저 공격당하여 우리의 백성들이 크게 상하게 됩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제가 먼저 선수를 치고, 그 뒤의 후환도 저 혼자 뒤집어 쓰겠으니

이후에 문책당한다면 저 동안우가 혼자 꾸민 일이라고 둘러대십시오."


하지만 조간자는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 얼핏 들으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선수 필승이라고 먼저 공격하는 게 아무래도 훨씬 유리할텐데도 조간자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하지만 이후의 사건 전개를 보면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때의 조간자의 선택은 완전히 적중했다. )


7월, 범씨와 중항씨가 조씨의 집(아마 조씨의 수도인 진양이 아닌, 진나라 수도에 있던 조씨의 집인듯 하다)을 공격하니,

조간자는 진양으로 도망갔고, 범씨와 중항씨가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진양을 포위하였다.


이로써 조간자는, 한단이 자기 말을 안듣는다고 조오를 죽였다가

도리어 본인이 역적이 된 것이다.


공자는 이 일을 두고 '춘추'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가을에 진나라조앙진양으로 들어가서배반하였다.


8hpdCiaeuBqOFZ1AuOsny8sleYsuI7BBaYz4A_z426RTfV_9QNXiiBe9hjx4-k4zSZoX862KCr5Q4TDvM8VndQ.webp.ren.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진나라 육경의 세력도>


하지만 이때 아직까지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있던 다른 육경 가문들

즉 위씨, 한씨, 지씨는 범씨 중항씨와는 이해관계가 달랐다.


한씨는 본래 조씨가 반란에 휘말려 멸문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씨가 나서서 조씨의 자손을 찾아서

다시 '경'의 위치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과거가 있어 원래부터 조씨와 사이가 좋았고,

위씨 역시 조씨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므로 딱히 이들은 범씨, 중항씨의 진양 포위전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한편, 지씨는 조씨와 그렇게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범씨 중항씨와 친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도리어 지씨는, 이때 중항씨와 범씨의 군사행동을 빌미로, 이들을 반란자로 몰아 멸문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지씨가 진나라 임금인 진정공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임금님께서 과거 우리 대신들에게 명하시기를, 난을 먼저 일으킨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맹세하시고

그 맹세를 적은 맹서를 황하에 던져 가라앉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 세 신하(조앙, 중항인, 범길사)는 모두 난을 먼저 일으킨 자들인데, 유독 조앙 만을 군대를 동원하여

축출하려 하시니, 이것은 형의 집행이 매우 공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저들을 모두 축출하소서."


11월, 지씨 가문의 종주였던 지문자 순력이 한씨, 위씨, 그리고 당시 진나라 임금이었던 진정공까지 모두 데리고 출병하여

진양을 공격하던 범씨, 중항씨를 토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그러자 자신감을 얻은 범씨, 중항씨는 도리어 조씨는 놔두고 먼저 자신들을 토벌하러온 진나라 군대를 치려 하였는데,

문제는 이 진나라 군대에 임금인 진정공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제나라에서 마찬가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도망온 제나라의 옛 상경이었던 고강이

범씨에게 의지하고 있었는데, 두사람(중항인, 범길사)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팔이 세번 부러져 보아야 좋은 의원의 치료법을 알게 되는 법입니다.

오직 임금을 공격하는 일만은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민심이 떠나 백성들이 돕지 않게 됩니다.


저도 임금을 공격한 잘못으로 인해 제나라에서 망명해 이곳에 와있습니다.

저들 세 가문(지씨, 한씨, 위씨)은 아직 서로 화목하지 못하니, 저들을 먼저 공격하면 모두 이길 수 있습니다.

그들을 이기고 나면 결국 임금이 누구를 가까이 두고 정치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러지 않고서 지금 임금을 먼저 공격한다면 이것은 민심을 적으로 돌리고

저들 세 가문이 서로 화목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사람은 고강의 이 말을 듣지 않고는 결국 진정공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국인들(國人- 진나라의 일반 백성들)이 진정공을 도우니 결국 중과부적으로 중항씨, 범씨가 패배하였다.


그러자 3가(지씨, 한씨, 위씨)가 뒤따라 진정공에게 합세하여 중항씨와 범씨를 공격하니

정미일, 순인과 범길사가 조가朝歌로 달아났다.


지도2.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1) 한단
2) 진양

3) 조가

저기서 빗금친 부분이 당시 범씨, 중항씨의 주요 영역들.

진양 포위가 실패하고 근거지인 3)조가로 도망하여, 저 빗금친 지역을 근거로 진나라군에 맞서 항쟁을 계속한다.



범길사와 중항인이 조가로 도망간 이후, 한씨와 위씨가 진정공에게 조씨를 복권시키기를 청하니

12월 신미일, 조간자 조앙이 진나라 수도로 들어와서 궁궐 앞에서 맹약하였다.


한씨 위씨는 왜 조씨를 복권시키자고 했을까?

아마 한씨 위씨가 평소부터 조씨와 사이가 돈독했던 것도 원인의 하나일테고,

또한 여기서 조씨까지 멸망시킨다면 오히려 지씨가 어부지리를 얻게되어

남은 자기들 두 가문 만으로는 지씨를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후 역사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이게 맞을듯.


아무튼 여기서 다시 상기해봐야 할 것은,

앞서 조간자의 선택이 굉장히 현명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동안우의 말을 듣고는 먼저 범씨, 중항씨를 공격하기라도 했다면

오히려 다른 육경 가문 모두를 적으로 돌려 조씨가문이 멸문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범씨 중항씨가 먼저 행동할 때까지 리스크를 지고서 기다린 결과,

결국 그들의 공격을 받고는 진양으로 도망가 농성하는 사이, 범씨와 중항씨는 스스로 역적으로 몰려 몰락하고 말았다.


이후 조나라의 기틀을 닦은 현명한 군주인 조간자의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B.C 496년]

지씨의 가신이었던 양영보가 조씨의 책사였던 동안우를 미워하여, 지씨의 종주인 지문자 순력에게 말했다.


"이번 일을 빌미로 동안우를 죽이지 않고 끝내 조씨집안의 정사를 그가 맡아서 하게 된다면

조씨가 반드시 진나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어찌 동안우가 먼저 반란을 획책한 일로써 조씨를 징벌하지 않으십니까?"


지문자가 이 말을 듣고는 조간자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다.


"범씨와 중항씨가 반란을 일으키기는 했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동안우가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이니

이는 사실상 동안우도 함께 반란을 일으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나라에 '먼저 반란을 일으킨 자는 죽인다'는 법이 있습니다.

이미 다른 두사람(범씨, 중항씨)은 죄를 받았으므로, 동안우를 진나라 국법으로 처리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들은 조간자가 크게 근심하자, 동안우가 조간자에게 말했다.


"내가 죽어 진나라가 편안해지고 조씨가 안정된다면 내가 무엇때문에 살려하겠습니까?

사람은 누군들 죽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미 죽음이 너무 늦었습니다."


라 말하고 스스로 목매 죽었다.


조간자는 그의 시신을 저자거리에 벌려놓고서는 지문자에게 이렇게 전했다.


"당신이 죄인을 죽이라고 명하시기에 동안우는 이미 죄를 받고 죽었습니다."


그러자 지문자는 조간자에게 가서 맹약하였다(화친한 것이다)


이후 조씨가 안정되자 조간자는 동안우의 신위를 조씨의 사당에 모셨다.



여름, 진나라가 군대를 보내 범씨 중항씨의 근거지인 조가를 포위하여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를 전해들은 주변국가들, 제나라, 위나라, 노나라는 서로 만나서

범씨와 중항씨를 구할것을 모의하였다.


(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노나라까지 여기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노나라는 송나라와 함께 가장 마지막까지 진나라를 배신하지 않고 섬겼던 나라인데

그런 노나라마저도 이 춘추 말기가 되어 진나라의 국정이 육경의 내분으로 혼란해지자결국 진나라를 배신한 것이다.


참고로 진나라를 배신한 순서는

제나라, 정나라 -> 위나라 -> 노나라 -> 송나라 순이다. )


진나라의 주력 부대가 조가를 포위하러 떠난 이때, 진나라의 수도 근처에 있던 범씨, 중항씨의 잔당들이

군(진나라 내에 있던 중원문화에 동화되지 않은 민족들)을 이끌고 진나라의 수도를 급습하여

수도 안에서 시가전을 벌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그러자 한사람은 주나라로 도망가고, 한사람은 잔여 병력을 이끌고 조가로 들어가서 범씨 중항씨의 본대와 합류했다.


겨울 12월, 진나라가 범씨, 중항씨의 군대를 로에서 깨뜨렸고,

또다시 백천百泉에서 범씨의 군대와 원군으로 왔던 정나라 군대까지 패배시켰다.


지도3.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12월의 전쟁. 정나라 원군까지 합세했지만 진나라가 모두 이겼다.

아직까지는 조가 성내에 입성하지 못하고 교외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B.C 494년]

494년전쟁.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494년의 전투 흐름도>


여름 4월 제후와 위후가 한단을 구원하기 위해 오록五鹿을 포위하였다.

작년에 범씨, 중항씨를 구하기 위해 움직임을 보이던 제나라가, 드디어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와 함께 진나라를 공격한 것이다.

(지도에서 1로 표시된 아랫쪽 노란 동그라미.)


가을, 제후와 위후가 건후에서 범씨를 구원하기 위해 건후乾侯에서 회합을 가졌다.


노나라 군대가 위나라 장수 공어, 그리고 중산국과 회합하여 군대를 모아 진나라를 쳐서

극포棘蒲를 취하였다.

(지도에서 2로 표시된 윗쪽 노란 동그라미. 주황색 화살표는 제나라, 위나라 군과 합세하는 노나라, 중산국 군대를 나타낸 것. )


이로써 진나라 하나를 놓고 정, 제, 위, 노, 거기에 중산국까지 편을 먹고

범씨 중항씨를 도와 진나라 하나를 상대로 돌림빵을 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 10월, 조간자가 조가를 계속 공격하였다.



[B.C 493년]

493.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빨간 동그라미가 척읍)


6월, 조간자가 진나라에 도망와있던 위나라 세자(였던) 괴외를 위나라 땅인 척읍으로 몰래 들여보냈다.

아마 위나라와 전쟁중이었으므로, 위나라 세자였던 괴외를 이용하여 위나라 안에서 내란을 일으키게 하여 호응하려 한 것 같다.

( 이 위나라 세자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밉보여 국외로 쫓겨나서 한참을 떠돌이로 살다가

나중에 입국하여 자신의 아들을 밀어내고 임금이 된 인물로, 임금이 되고 나서는 정치를 개판으로 하다가 다시 쫓겨난다.

이 인물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여기https://namu.wiki/w/%EC%9C%84%ED%9B%84%EC%9E%A5%EA%B3%B5)


8월, 제나라가 범씨, 중항씨를 돕기 위해서 군량을 실어 조가로 들여보내려 하였는데,

이 일을 정나라 신하인 자조, 자반에게 맡겼다.


이것을 들은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있던 조간자는 이들을 막기 위해서 나왔고,

범길사는 이들을 맞아들여 서로 호응하기 위해서 나왔다가 척읍 근처에서 양군이 서로 만나게 되었다.


병력은 정나라 + 범씨 연합군쪽이 더 많았으므로,

진나라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당시 조간자의 책사로 있던 노나라 출신 양호가 말했다.


"우리의 병력이 저들보다 적으니, 정나라 군이 당도하기 전에 깃발을 높이 세운 병거로써 크게 진을 친다면

저들이 우리의 진영을 보고 두려움을 가질 것이니, 이 때에 교전한다면 반드시 저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 원래 노나라 출신이었던 양호는, 노나라 3경 중 하나였던 계손씨의 가신으로 있다가, 계손씨의 종주인 계평자가 죽자

그 아들을 가두고 계손씨의 힘을 빼앗아 삼환씨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신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려 하다가 삼환에게 패하고 진나라로 달아났는데, 이때 조씨에게로 도망가서 그의 책사가 되었다.

비록 노나라에서는 권신이고 간신같은 인물이었으나, 조간자에게서는 조간자의 1등 참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조씨 가문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


조간자가 양호의 말을 따랐다.

조간자가 진나라 군을 모아놓고 그 앞에서 맹세하기를,


"범씨와 중항씨가 천명을 어기고 백성들을 참살하고, 진나라를 독점하기 위해 그 임금을 멸망시키고자 한다.

우리 임금께서는 그동안 정나라를 믿고 의지하며 그들을 도왔는데, 지금 오히려 정나라는 도리를 어기고서

임금(진나라 임금)을 버리고 그 신하(범씨, 중항씨)를 도우니,

여러분들이 천명을 순종하고 군명에 복종하며덕을 상도로 삼고 치욕을 없애버리는 것이 이번 전투에 달렸다.


전쟁에서 적을 이긴 자는,

상대부는 현을 받을 것이며,

하대부는 군을 받을 것이며(주나라 제도에는 천리에 1백개의 현이 있고, 현에는 네 개의 군이 있다)

는 토지 10만 이랑을 받을 것이며,

서인, 공인, 상인은 관직을 받을 것이며,

하인이나 노예는 그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될것이다!"


이에 진나라 군대는 척읍에 있던 위나라 세자 괴외와 함께 정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다.

전투 과정에서 정나라 병사의 창에 맞아 조간자는 어깨에 부상을 입었으나, 위나라 태자 괴외가 조간자를 구하니,

결국 그들을 대파했다.



[B.C 492년]

봄, 제나라와 위나라가 척읍을 포위하고 중산국에 원군을 요청하였다.

겨울 10월, 조간자가 조가를 포위하고 그 남쪽에 주둔하니,

범길사, 중항인이 포위를 뚫고 한단으로 도망갔다.



[B.C 491년]

491.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범씨, 중항씨의 탈출. 선우鮮虞라고 표시된 나라가 중산국이다. 빗금쳐진 부분은 위, 제에게 공격받는 진나라의 영토.>


가을 7월, 제나라 진걸( 훗날 제나라를 찬탈하게 되는 전씨의 이 당시 종주였다. 일명 진희자 )과 위나라 영궤가

범씨, 중항씨를 구원하기 위해 오록을 포위하였다.


9월, 조간자가 이끄는 진나라군이 한단을 포위하였다.

11월, 한단이 항복하니 범길사, 순인은 중산국으로 도망갔다.


12월, 제나라 국하(국씨는 대대로 이어지는 제나라 상경 가문의 하나이다)가 진나라를 쳐서

,,,,,陰人,,壺口9개 읍을 취하고서, 중산과 회합하여 중항인, 범길사를 백인柏人으로 들여보냈다.


[B.C 490년]

봄, 조간자가 군대를 이끌고 백인柏人을 포위하니, 중항인과 범길사가 제나라로 도망갔다.

이로써 범씨와 중항씨의 세력은 진나라에서 완전히 축출되었으며

진나라 6경중에 두 가문이 멸문되고, 4가문만이 남았는데

지씨, 조씨, 위씨, 한씨가 그들이다.


이중에 지씨가 가장 강했으며 그 다음이 조씨였고, 위씨 한씨 순이다.



앞서의 글에서도 잠깐 소개했었던 산시성 후마시에서 발견된 후마맹서는

바로 이 당시의 것으로 보인다.


Houma_Mengshu.pn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sfzd1247145476.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unnamed.jpg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진晉나라의 분열 - 1 범씨, 중항씨의 반란

후마맹서는 이 편의 주인공 격인 조간자가 조씨가문의 신하들과 함께 맹약하며

가문의 종주인 조간자에게 충성하고, 외부의 적에 맞설 것을 맹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시기에 조씨 가문이 얼마나 절체절명의 위기였는지를 생각한다면

이 후마맹서라는 유물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유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실물을 보고 싶은 물건 중 하나.


이 시기에 조간자가 조금이라도 실책을 범했다면 아마

훗날 그 진秦나라의 통일을 마지막까지 훼방놓는 조나라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전국시대 조나라는 조간자가 초석을 놓았고,

그 아들인 조양자가 그것을 이어받아 위기를 극복하며, 삼가분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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