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쓰윽 훑어보는 대중음악 발전의 역사 1편 (1920s-1950s)[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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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74회 작성일 24-03-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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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중음악



image.png 쓰윽 훑어보는 대중음악 발전의 역사 1편 (1920s-1950s)



*이 글은 대중음악의 변천사를 각 시대를 대표하는 앨범, 혹은 뮤지션들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기 전,

대중음악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려야겠지?

사실 대중음악의 정의는 그 단어에 대놓고 나와있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음악"



대중성,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짙은 상업성,

바로 이것이 대중음악의 (popular music) 정의이자 정수임.

허나 의외라면 의외로 대중음악의 역사는 생각보다 굉장히 짧음.

사람에 따라 대중음악사에 편입되는 기간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중음악"의 역사라고 한다면

보통 1900년대 초반부터 보고있음.



대중음악의 역사를 1900년대 초부터 보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는데,

1800년대 후반을 거치며 유럽과 미국은 고도의 산업화를 거쳤음.

이는 사람들의 소득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음악에 대한 수요와 소비는 전에 비해 더더욱 높아지게 되었음.

때문에 유래없는 경제 성장에 덩달아 그들의 음악시장 역시 산업화를 이루게 되었고,

새롭게 바뀐 음악시장은 이전 클래식 에라에 비해 접근성은 낮아지고 생산성은 오르게 됨.

이때부터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음악,

소위말해 상업성이 높은 음악이 주류로 떠오르게 되는데,

당시 음악의 트렌드는 이전에 비해 매우 파격적으로 바뀌게 되었고,

또 한번 확립된 트렌드 역시 굉장히 단기간에 변화하게 됨.

이 무렵이 바로 1900년대임.



또 후술하겠지만 앞서 대중음악의 핵심이 대중성과 상업성이라고 했음.

허나 너무 대중성과 상업성에만 몰빵하고 음악성이 없다시피 하다면 애초에 대중음악은 생존할 수 없었음.

그니까 애초에 대중음악 역시 시작부터 음악성이라는 요소를 배재할 수 없었다는거.

이에 더해져서 대중음악이 발전함에 뮤지션들은 현대음악의 음악성 및 작품성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오늘날에 와서 음악성은 대중음악의 평가 요소의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됨.

(번외: 이 글에서 현대음악은 대충 클래식의 현대판이라고 때우겠음)
(현대음악과 대중음악은 다른거임)



그러면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겠음.





2. The Roaring 20's (1920s)



image.png 쓰윽 훑어보는 대중음악 발전의 역사 1편 (1920s-1950s)

(1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미국은 첫번째 황금기를 맞이한다)




미국에게 1920년대는 굉장히 특별한 시기로 다가옴.

첫번째 세계대전이 종결됨에 따라 미국은 유례없는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되고,

여러 진보적인 정책들이 실시되며 사회적인 분위기 역시 굉장히 파격적으로 변화함.

소득이 올라가며 국민들의 생활 수준 역시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비록 빈부격차는 여전히 극심했으나 부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매일밤 광란의 파티를 즐김.

1920년대는 미국의 첫번째 황금기이자,

"The Roaring 20's"로 기억됨.

(대충 이때의 사회 분위기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면 된다)



20년대에 소득 수준이 상승하며 미국에서 음악에 대한 수요는 그 어느때보다 높았음.

그리고 당시의 휘향찬란한 댄스 플로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억압 받던 흑인들의,재즈와 블루스가 수놓았음.




Louis Armstrong and his Hot Five - "Fireworks"



광란의 20년대를 수놓은 대표적인 뮤지션을 꼽아보자면 루이스 암스트롱이 있음.

비록 오늘날에는 "What a Wonderful World" (1967)혹은 "La Vien Rose" (1950)의 커버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는 본래 트럼펫 연주자이자 재즈 뮤지션이었음.

때문에 미국에선 재즈의 대명사로 암스트롱 옹과 그의 출신지, 뉴올리언스를 꼽을 정도.



1925년, 루이스 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 자신의 밴드, Louis Armstrong and his Hot Five를 결성하였고,

이들과 함께 수많은 재즈 곡들을 히트시킴.

위 곡, "Fireworks"는 굉장히 빠른 템포의 신나는 재즈곡임.

이처럼 당시 시대상 연회와 파티가 일상이 되었기에 자연스레 대중음악의 수요는 신나고 경쾌한,
(톰과 제리의 그 음악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쉬움)

허나 나름의 격식이 차려진 형태로 발전하였고,

그 수요에 딱 들어맞음 음악이 바로 재즈와 블루스였음.





3. Swing! Swing! Swing my baby! (1930s)





Bing Crosby - "Swinging on a Star"
(본 곡은 1944년에 발매되었으나, 빙 크로스비는 미국의 30년대를 수놓았다)



193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는 1920년대 미국의 황금기에 비해 매우 달라졌음.

미국의 사회와 경제는 대공황으로 극심한 침체기를 겪게 되었으며,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는 전운이 점차 감돌기 시작되었음.

미국인들은 그 어느때보다 힘든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고,

이들에게 음악이라는 도피처는 더더욱 소중한 존재가 되었음.



1930년대의 대중음악 풍은 20년대와 비슷했는데,

여전히 루이스 암스트롱을 비롯한 재즈와,

그 재즈에서 파생된 댄서블한 음악인 스윙-재즈가 여전히 강세였으며,

빙 크로스비로 대표되는 아티스트들은

우리가 소위 생각하는 올드팝, 트레디셔널 팝을 정립하였음.

사실 이후 나올 시대에 비해 20년대와 30년대 사이에는

대중음악의 흐름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는 힘듦.

무엇보다 자료가 존나게 찾기 힘듦






Bing Crosby - "White Christmas"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
(이 부분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친숙할 것이다)





4. "Fly me to the moon~" (1940s)




Frank Sinatra - "Fly Me to the Moon" (1954)



1940년대 미국에서는 소위 래그타임 (Ragtime)이라고 일컫는 음악이 유행하였음.

이는 간단하게 피아노 및 재즈 반주 위에 트레디셔널 팝 스타일의 보컬을 얹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래그타임이라는 장르의 기원은 사실 18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감.

앞서 말했듯 필요한 요소는 두가지,

피아노와 멀쩡한 성대였기에 진입장벽도 상당히 낮았음.

때문에 미국 남부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연주하던 음악,

특히 흑인들이 모여서 연주하던 음악이 래그타임의 시작이었음.

그리고 이것이 당시 유행하던 재즈와 융합되어 미국의 트레디셔널 팝이 비로소 완성되었음.




Scott Joplin - "The Entertainer" (1902)
(유명한 래그타임 곡, 필자도 피아노 학원에서 연주하던 기억이 있다)



재즈와 스윙 역시 1940년대 초반까지는 여전히 강세를 보였음.

굉장히 빠른 템포의 재즈를 일컫는 비밥 (Bebop)이 등장했으며,

재즈와 스윙은 여전히 댄스 플로어들을 악틱 몽키즈 레퍼런스 수놓았음.

허나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신나고 활기차던 대중음악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고,

이는 낮은 톤과 느린 템포로 이루어진 음악으로 대체되었음.

때문에 스윙 및 재즈 뮤지션들은 타 장르로의 전환을 꾀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로큰롤의 (Rock n' Roll) 시초가 될 리듬앤 블루스 (Rhythm and Blues),

즉 R&B였음.





Duke Ellington - "Take the 'A' Train" (1941)
(스윙재즈에서 파생된 비밥의 대표곡)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는 컨트리 음악 역시 성행하였는데,

여러 할리우드 영화에서 카우보이와 서부개척시대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연스레 그들의 음악,

컨트리 역시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였음.

카우보이들이 부르던 노래들은 곧 스윙 음악과 블루스와 섞이게 되었는데,

이는 홍키통크라는 (Honky Tonk) 수십년간 컨트리 음악을 대변할 스타일로 자리잡음.



홍키통크란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비음 보컬에 기타 혹은 피들같은 현악기로 이루어진 음악임.

주로 사랑, 실연, 자기 연민 등에 대한 씁쓸한 가사를 다루는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컨트리 음악과 굉장히 흡사하시만 조금 울적한 분위기임.




Ernest Tubb - "Walking the Floor Over You" (1941)
(홍키 통크의 대표곡, 흔히 컨트리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촌스럽지 않다)



1940년은 바로 당시 미국의 음악을 정의한 사람이자,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불린,

프랭크 시나트라한 명으로 정의 할 수 있음.



image.png 쓰윽 훑어보는 대중음악 발전의 역사 1편 (1920s-1950s)

(아이돌의 원조, 프랭크 시나트라)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아이돌"이라는 칭호의 원조인 프랭크 시나트라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의 등장 이전,

청년 세대, 특히 여성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음.

때문에 음악시장 역시 그의 등장에 따라서 변형을 꾀했는데,

시나트라의 성공을 통해 시장은 점차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저음의 목소리의 가수,

일명 크루너 (Crooner) 및 비슷한 유형의 팝 아티스트들을 몰색하기 시작했고,

이는 규모가 큰 밴드들의 몰락을 의미했음.
(당장 프랭크 시나트라가 속했던 밴드, Dorsey Brothers가 비슷한 케이스)




Frank Sinatra - "That's Life"
(프랭크 시나트라는 대표적인 크루너였다)



앞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스윙재즈가 점점 몰락해감에 따라 뮤지션들은 장르의 변화를 꾀하였고,

이는 리듬앤 블루스, 우리가 흔히 아는 알앤비의 등장으로 이어졌음.

그리고 1950년,

대중음악의 흐름은 정말 너무나도 크게 바뀜.





5. Ooh-Wee-Hoo, I look just like Buddy Holly~ (1950s)



image.png 쓰윽 훑어보는 대중음악 발전의 역사 1편 (1920s-1950s)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1950년대는 수십년간 향후 대중음악의 기반이 될 로큰롤이 드디어 등장하게 됨.

앞서 등장한 알앤비, 컨트리, 웨스턴 스윙 등이 모조리 섞여 기반이 되었으며,

보 디들리, 빌 헤일리와 코멧츠, 제리 리 루이스 외에도,

그 유명한 리틀 리처드, 척 베리, 버디 홀리,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등장한 시기였음.
(밥 딜런 역시 1959년에 데뷔하였다)





1. Little Richard - "Tutti Fruitti" (1956)
2. Buddy Holly - "Everyday" (1957)
3. Chuck Berry - "Johnny B. Goode" (1958)
4. Elvis Presley - "Jailhouse Rock" (1957)



로큰롤은 흑인 인구가 미국 북부의 대도시들로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시카도 등) 유입되며 시작되었음.

이들의 스윙-재즈가 알앤비로 발전하였고,

백인층이 알앤비를 수용,

그리고 그것을 백인들의 입맛에 맞게 조금 변형한 것이 바로 로큰롤로 이어졌음.



image.png 쓰윽 훑어보는 대중음악 발전의 역사 1편 (1920s-1950s)

(로큰롤의 아버지, 척 베리)



로큰롤을 가장 널리 유행시킨 인물은 바로 그 유명한 '척 베리'임.

척 베리가 시작한 음악이 바로 로큰롤의 시초가 되며,

이는 훗날 수많은 서브장르를 파생시키는 "록" 음악의 뿌리가 되었음.

이 영향력이 얼마나 거대했냐면,

훗날 비틀즈의 프론트맨 및 음악 전체의 아이콘이 될 존 레논은 로큰롤이라는 장르를 척 베리라고 정의했음.





사회자: 존, 당신은 근 수년간 척 베리의 열혈한 팬이라고 했습니다. 그를 만난 소감이 어떠신가요?

존 레논: 네, 그를 방금 만났습니다. 정말 엄청난 영광입니다.

사회자: 관객들 보고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존 레논: 네, 로큰롤의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척 베리'입니다.
1950년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말 그대로 동경했습니다.

요코는 무시하자



당장 50년대에도 로큰롤에는 수많은 세부 장르들이 있었음.

가장 먼저, 로커빌리 (Rockabily)라는 장르를 언급 할 수 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 조니 캐쉬 등으로 대표되는 백인 뮤지션들의

컨트리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로큰롤을 의미했음.



한편 리틀 리처드와 척 베리 등의 흑인 로큰롤 뮤지션들은,

알앤비를 바탕으로 하는 흑인의 색채가 여전히 짙게 남은 음악들을 선보였는데,

흑인 음악의 색채가 짙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

인종을 가리지 않고 매우 큰 인기를 끌었음.





Elvis Presley - "Unchained Melody"
(엘비스 프레슬리의 마지막 공연, 개인적으로 모든 음악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공연 영상이다)




비록 로큰롤이 드디어 메인스트림에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알앤비 역시 1950년대에도 강세를 보였음.

빠른 템포의 알앤비와,

흔히 우리가 "두-왑" (Doo wop)이라고 일컫는 음악이 블루스의 형태로 공존했으며,

각각레이 찰스와 팻츠 도미노라는 아티스트들로 대표되었음.

이는 우리가 흔히 일컫는 "흑인 소울"로 현재까지 이어짐.






1. The Chords - "Sh Boom" (1954)
(Life could be a dream <<< 이 가사로 굉장히 유명하다)
+ 영화 [카]에 삽입된 곡이다.

2. Ray Charles - "What'd I say" (1959)
(로큰롤 + 블루스가 섞인 곡)



두왑의 형태는 상당히 단순함.

재즈 및 블루스 음악 위에 얹는 가볍지만 무게감 있는 합창.

뒤에 하모니를 얹는 소리가 "두-왑" 소리라서 "두-왑"이라는 장르로 불리게 됨.




image.png 쓰윽 훑어보는 대중음악 발전의 역사 1편 (1920s-1950s)

(음악이 죽은 그 날)



한편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비극들 중 하나 역시 1950년대에 일어났는데,

바로 일명 "음악이 죽은 날" (The Day The Music Died)이었음.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로큰롤 뮤지션 세 명,

버디 홀리 (위저의 그 버디 홀리 맞다), 리치 발렌스, 그리고 더 빅 보퍼가 공연 이후 이동 중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는 사건이었는데,

이는 훗날 돈 매클레인의 "American Pie" (윤석열이 부른 그 노래 맞다)에서 잠시 언급됨.

내가 쓴 아메리칸 파이 해석: https://www.fmkorea.com/6023427715










비틀즈와 롤링스톤즈의 브리티쉬 인베이전부터
크림, 도어즈의 사이키델릭,
핑크 플로이드와 제네시스의 프로그레시브 록까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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